20여 년 동안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왔었다.
그 와중에 남들이 다한다는 부동산 투자에도 뛰어들었다가 거의 다 말아 먹었다. 사전조사도 없이 감으로만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고, 남들이 다 한다는 주식 투자는 계좌 개설도 하지 않았었다. 그냥 회사에서 일만 열심히 하는 것이 모든 것이었고, 상사랑 저녁에 술 마시고 연말에 승진해서 인정받으면 그 외는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었지...
필자의 경우를 비추어 우물 안 개구리 3대 요소를 개인적으로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자기 관리 하지 않음
투자에 시간을 쓰지 않음
회사는 나의 전부
자기 관리 하지 않음
운동이란 정말 몸 좋고, 원래부터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만 하는 줄 알았었다. 수영을 정말 잘하는 물개친구에게 정말 부드럽고 힘도 안 들이고 노는 것처럼 수영해서 부럽다고 했더니, 물개친구는 아니란다. 숨이 차서 죽을 것 같은데, 그냥 참고 하는 거라고 한다.
매일매일 술을 마셨다. 상사와는 기회만 되면 시간을 가지려 했었고, 스트레스 받거나 너무 힘들 때에는 친구들과 부어라 마셔라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 그 당시의 몇 시간 며칠 동안은 잊혔으니 나름대로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외 다른 방법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남들도 다 힘들었고, 힘든 사람들끼리 위로하는 그 시간이 매우 소중했었다.
회사에 성격이 나쁘다고 소문이 났거나, 자기 할 말 다 하는 고집 센 직원들이 몇몇 있었다. 회식은 가급적 참석하지 않고, 자기 할 일만 딱 끝내고 퇴근시간 되면 칼같이 퇴근해서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우리끼리 뒤에서 화제에 올리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성격 나쁘다고 소문이 나 있는 직원이 현인이다. 실속 있다. 그 직원은 저녁에 헬스와 조깅도 하고, 부동산 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했었다. 그 결과 나보다 퇴직을 매우 빨리했었지만, 그 당시 이미 건물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럽다.
투자에 시간을 쓰지 않음
부동산은 그냥 적당히 사기만 하면 오르는 줄 알았다. 그래서 적당한 곳에 적당한 가격에 분양권을 매입했었다. 3년이 지난 후 알게 된 큰 2가지는 그 물건이 고분양가로 미분양 물건이었고, 전년도인 2008년에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졌다는 것이었다. 하하하. 그리고 입주시점에는 부동산 가격들이 지금처럼 폭락을 한 상태라 기존 부동산 매도도 힘들었으니, 입주일에 맞추어 입주는 전혀 불가능한 상태였다. 입주 지연이자는 알지도 못했던 최고의 옵션이었고. 분양가의 18% 정도로 기억한다. 도저히 이자를 낼 여력이 없었다.
계약금을 포기하면 깡통, 웃돈은 얹어서 팔면 슈퍼 깡통이라고 한다. 1년간을 분양권 매도에 매일매일 매달렸지만 매도하지 못하다가, 가까스로 중국에서 사업을 하시던 현금이 많았던 분에게 슈퍼 깡통으로 물건을 넘길 수가 있었다. 손실액으로만 보면 살고 있던 집 한 채가 날아간 정도라서,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해서 기분이 짠했다.
분양권을 매수한 분과 그날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었는데, 그분은 중국에서 사업을 오래 하시면서 갖은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이제야 자리 잡아가고 있는 차에 드디어 서울에 괜찮은 집을 장만하게 돼서 기쁘다고 한다. 그전에는 한국에 들어와도 자식들과 제대로 집 식탁에 밥 한번 차려놓고 먹기도 여의치가 않았다고 한다. 듣고 나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좋은 분께 좋은 집을 매도하게 되어서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고,, 앞으로 행복하게 잘 사시면 저도 그걸로 행복해질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진심이었다. 집에 와서는 1년 만에 푹 꿀 잠을 잤다. 돈은 돈이고. 나는 나이고. 그 집은 나의 집이 아니었던 게지.
회사는 나의 전부
2000년 1월 1일, 약 1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회사는 당시 업계 최고의 IT 회사였다. 업계 최고의 연봉과 복지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고, 당시에 어느 회사도 하지 않던 주 5일 근무를 시행하고 있었다. 업무 환경과 조직의 분위기도 나에게는 천국이었다. 교육 프로그램도 잘 되어있고, 업무량도 적절하게 배분되어서, 매일매일 업무에도 지치지 않았었다. 한 번씩 진행하는 회식은 메뉴가 최소 소갈빗살이었고, 배울 것이 많았던 선배와 상사들과의 시간이 내게는 정말 즐겁고 유용한 시간이었다. 지금도 그분들이 많이 생각난다.
IT 버블이 걷어지면서 힘들어지는 회사들이 많이 생겨났고, 그 회사는 여러 차례 적대적이든 전략적이든 M&A를 피할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구조조정도 함께 진행되었는데, 당시 우리 본부만 보더라도 70명 정도의 팀이 일괄 퇴직 접수를 하는 것도 보았고, 30명 정도 규모의 우리 팀이 매년 3명 정도씩 줄이더니 수년 후에는 10명 정도만 남게 되었다. 회사 전체적으로 매년 50명 정도는 퇴사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인력이 감소하는 만큼 매출도 당연히 감소를 했었고. 정치에 휘말리고. 자본에 휘말리고. 회사는 점점 더 경직되어 갔다.
부족한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었기에 어떻게든 버텨야 했고, 어떻게든 그 안에서 더 중요한 업무를 맡기 위해서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운이 좋게도 여러 개의 팀을 옮겨 다니면서 더 중요한 업무를 맡게 되고, 좀 더 빠른 승진을 하다 보니 이 회사에서 정년퇴직까지도 무리 없이 갈수 있겠다는 비현실적인 생각들로 오버 페이스를 하고 있는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오버 페이스를 하는 동안 내 몸은 망가지고 있었고, 지쳐가기 시작했다. 만사가 귀찮아지고 있었고, 술을 아무리 마셔도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았다. 이직도 고민했었지만 이직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조금 늦은 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 불러 주는 회사가 있었다면 또 어떻게 풀렸을지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회사들은 구체적으로 제시는 하지 않았었다.
여하튼 조금만 더 일찍 눈을 떴더라면 오버런을 하지 않고 그 회사에서 더 조용히 길게 가는 전략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이직에 대한 준비를 보다 더 현실적으로 했을 것이다. 20년 이상 장기 근무를 했다고 부러워하는 친구도 있는 반면에, 너무 오래 있었기 때문에 외부 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을 하기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다. 두 가지 모두 선택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총평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도 나는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았을 것이다. 그 시간 안에서 나는 많은 걸 배웠고, 그렇게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지 않았더라면 난 개구리조차도 되지 못한 올챙이로 끝났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20년 우물 안 개구리! 존경한다. 고생 많았다.
사진: Unsplash의David Cl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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